평양냉면은 세 번은 먹어 봐야 맛을 안다고들 한다. 처음엔 행주 빤 물 같던 육수가 세 번째쯤이면 슴슴하게 스며든다나. 나는 그 세 그릇을 온전히 비우기도 전에 수백 그릇을 날랐다. 전역 후 여섯 달간 돈이 필요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한여름 냉면집에서 하루 열 시간씩 그릇을 들고 뛰었다. 그 여름, 냉면 맛은 끝내 알지 못했다.
복학하고 어쩌다 신문사에 다시 들어갔고, 용역 노동자 연작 기획을 준비했다. 4년 전 청소 노동자 휴게실 몇 곳에 갔을 때 멀쩡한 방이 드물었던 게 생각나자 엉뚱한 걱정이 들었다. 그사이 모든 휴게실이 나아졌으면 어떡하지. 당연히 좋은 일인데, 그러면 기사는 뭘 쓰지. 지금 생각하면 고약한 걱정이다. 좋아졌으면 좋아졌다고 쓰면 될 일을.
한 달 남짓 서울캠 환경 노동자 휴게실 25곳을 돌았다. 고쳐진 곳도, 자리를 옮긴 곳도 있었다. 하지만 쉬기 어려운 방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업체에 요청해도 교체까지 1년 넘게 걸린 곳도 있었다. 노동자 대부분은 휴게실 월 1회 점검 규정도 몰랐다. 학생들이 찾아와 불편을 듣고 전달하겠다고 하는 일을 두고는 한 노동자가 이렇게 말했다. “연례행사예요.” 그 말 앞에서 머쓱해졌다. 이번 행사는 우리 차례였다.
신문사에서 밤을 새우고 이른 아침 310관 1층으로 올라가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쓰레기통 위에 뒤엉켜 쌓인 야식 뭉치를 치우는 노동자들이다. 담배를 피우러 기숙사 흡연 구역에 가면, 거기서도 밤사이 수북해진 꽁초를 쓸고 계신다. 나는 그 곁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언젠가 후문에서 노동자들이 시위했을 때도.
내가 힘들었던 날들은 또렷이 기억하면서, 이분들이 어디서 쉬는지는 좀처럼 떠올리지 않았다. 돈 받고 일하는 건 당연하게 여기면서, 일하다 보면 쉬고 싶어진다는 건 왜 당연하게 여기지 못했을까. 쉴 때 손님 의자에 누워 눈을 붙였던 나였는데. 취재에서 들은 부탁은 사람이 제대로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다시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듣고 돌아온 나는 기사를 쓴다. 그분들은 다시 그 방에서 쉴 것이다. 또 어떤 분들은 일을 마친 뒤 빨간 조끼를 입고 후문에 설 것이다. 학교 한쪽에서는 205관이 올라간다. 그동안에도 누군가는 몇 년째 같은 방에서 같은 부탁을 되풀이한다. 평양냉면은 세 번째 그릇부터 맛이 난다는데. 발행일에 신문을 들고 세 번째로 방을 찾아야겠다.